공의 이름은 명옥(命玉)이요 자(字)는 성진(聲振)이시니 계롱이 교동에서 나왔는데 이 태조 때 형조판서 함산군이신 원보(元寶)의 十四대손이시고 나의 돝아가신 조부님 휘 명규(命圭)의 아우님이시다。장성하매 형제분께서 함께 반미정공(伴嵋亭公‥휘 斗圭)에게서 공부하셨으나 과거에 뜻들 두지 않고 오로지 효도와 돈목으로써 힘쓰사 원계방(元季方)과 같다는 칭송이 있더니 물행히도 백씨(伯氏)가 일찍 작고하고 형수 경주이씨도 장사 달이 지나매 따라서 작고하여 온 마을이 그 높은 절개를 홈모하였다。 공께서 고아가 된 조카를 데려다 기르매 내 자식과 갈이 하였고 살림을 맡아다가 다스려서 굶주리게 하지 않으셨다。정성들 기울여 돈을 거둬서 선대의 비석을 세웠고 위토를 장만하여 향화를 올리게 하였다。을유년 중춘에는 몸소 장단(長濡)에 가서 성묘하고 돌아오시더니 맨 먼저 족보를 다시 간행할 것을 발의(發議)하시고 일가분 재현(載鉉) 영수(榮洙)와 함께 개성(松京) 및 교동에 가셔서 두루 여러 일가에 아뢰고 널리 사적울 묻고 또 홍주(洪州)에 이르러서 읍선생안(邑先生案‥역대군수명단)을 구해 보아 자세히 함산균(咸山君‥휘 元寶)의 사적을 알게 되어 보첩에 이어서 쓰게 하셨으며 또 늦가을에는 호남을 가셔서 수단(收單)하고 종이를 사 가지고 오시다가 중도에서 병환을 얻어 집에 오신 지 얼마가 안 되었는데 병환이 날로 위독케 되어 숨소리가 어려울 때 아들과 조카를 불러 말씀하기기릍、『내가 비록 가나 너희들은 족보를 끝마쳐 나의 뜻을 잇는다면 족히 지하에서 내 소망을 위로할 것이다』라고 하시더니 말씀이 끝나자 곧 돌아가시니 을유년 十一월 초 一일이다。 슬프다! 하늘이 만약 수를 더해 주었더라면 족보하는 일에서 반드시 정성을 쏟아 일을 주간하사 선대의 어짐을 천양(闡揚)함이 반드시 적지 않았을 것인데 구천에서는 하시기 어려우니 고아가 된 아들의 흐느낌과 눈물이 어찌 다함이 있으랴、그러나 나머지 경사가 다하지 않아서 이를 보답해 줄 것이다。공께서 집을 이끌 아들을 두셨으매 천성이 순수 근실하고 학식과 덕망이 후일에 가서 이어서 휼륭히 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하겠다。 공의 어지신 마음과 훌륭한 행실은 내가 가히 알고 헤아릴 수는 없으나 대략 듣고 본 것을 적어서 외람됨과 주제 넘음을 무릅쓰는 바이다。 서기一八六四년 갑자 월 일 不肖 從孫 載謙 謹狀